영주라는 지명이 언제 생겼을까요 ?
정감록 10승지 중 1승지요 순흥도호부가 있을 정도 번성했던 이곳 영주.
역사의 흐름에 따라 내기군, 내령군, 기목진, 기주, 흥주, 순흥, 영천, 순안, 풍기 등 참으로 다양하게 불려 졌습니다.
영주시홈페이지 연혁표상에는 1914년 일제강점시대에 영주라는 지명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고려사에 고종46년(서기 1259년)에 위사공신(衛社功臣) 김인준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시켰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영주(榮州)라는 지명이 고려시대에 생긴것과 일제시대에 생긴것을 엄연히 많은 차이가 납니다.
저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도 전혀 근거없는 내용은 아닌것 같이 이렇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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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홈페이지 연혁표
• 신라의 파사왕이 점령
• 신라로 복속(AD100 무렵)
• 통일신라시대
• 내기군을 내령군으로 개칭
• 풍기지역에 기목진 설치
• 고려시대
• 기목진을 기주로, 급산군을 흥주로 개칭(995)
• 내령군을 강주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순안으로 개칭(1143)
• 급벌산군은 흥주로 하였다가 다시 순정으로 개칭
• 순흥을 부로 승격(1348)
• 조선시대
• 순안을 영천으로 개칭하고 군수를 두었으며, 기주는기천현으로 개칭
• 문종의 안태지로 은풍, 기천 두 고을의 이름을 따 풍기로 개칭
• 순흥을 도호부로 승격(1413)
• 순흥도호부는 폐부, 영천군, 풍기군, 봉화현에 분리 편입(1457)
• 순흥도호부 부활(1683)
• 칙령28호로 안동부 관할(고종32년, 1895)
• 일제강점시대
• 부령 제111호로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합쳐 영주군(1914)
• 부령 제221호로 영주면이 영주읍으로 승격(1940)
• 해방이후
• 풍기면이 풍기읍으로 승격(1973)
•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고 풍기읍과 9개면은 영풍군으로 분리(1980)
• 영주시, 영풍군이 통합(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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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고려사에 나오는 내용과 그에 따른 영주라는 지명과의 관계를 설명한 글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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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안현(順安縣)은 원래 고구려의 내기군(柰己郡)인데 신라 파사왕(婆娑王)이 탈취하였으며 경덕왕이 내령군(柰靈郡)으로 고쳤다. 성종 14년에 강주도단련사(剛州都團練使)라고 불렀고 현종 9년에 본부에 소속시켰으며 인종 21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현령관으로 하였다. 고종 46년에 위사 공신(衛社功臣) 김인준(金仁俊)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시켰는바 구성(龜城)〔성종이 정한 명칭이다〕이라고도 부른다. 이 현에 마아령(馬兒嶺)이라는 험준한 지대가 있다. (1)
김준의 초명은 김인준(仁俊)이며 그 아비 김윤성(金允成)은 본래 천예(賤隸)로서 그 상전을 배반하고 최충헌에게로 투신하여 종노릇하는 사이에 김준과 김승준(金承俊)을 낳았다. 김준은 풍골이 늠름했으며 천성이 관후하고 아랫사람에게 공손하였다. (2)
즉 김인준은 천인 출신이라 고향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 순안을 고향으로 지명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먼 조상이 순안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만, 신분적 콤플렉스가 있는 김준은 본향이 중시되는 당시 시대적 흐름에 편승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집권자인 김준이 순안을 본향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고종 45년에 유경(柳璥), 박송비 등과 함께 최의를 죽이고 정권을 왕에게 복귀시키면서 김준은 왕에게 건의하기를 “최의가 백성을 돌보지 않고 굶어 죽어도 방관시하면서 양곡을 내어 구제하지 않았으므로 저희들이 의거(義擧)해서 죽였습니다. 양곡을 내어서 주린 백성을 구제하여 백성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즉시 장군 벼슬과 위사공신(衛社功臣) 칭호를 주고 그 공훈을 제2로 논정하였으며 이어 우 부승지로 임명하였다...(중략)...원종 원년에 김준을 제1등공으로 고쳐 평정해 주고 추밀원 부사 어사대부 주국 태자빈객(樞密院副使御史大夫柱國太子賓客)으로 삼고 익양군 개국백(開國伯)으로 봉하고 식읍(食邑) 1천호에 실봉(實封) 1백 호를 주었다...(중략)...그리고 김준을 교정 별감(校定別監)으로 임명하여 국가의 그릇된 일을 규찰케 하였다. 왕이 몽고로 떠나가면서 김준에게 감국(監國)케 하였는데 김준은 별초 30명을 시켜 주야로 자기 집을 호위하게 하였다.(3)
이처럼 김준의 당시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무신집권기에 본향과 처향의 중요성은 세력을 증식하고, 유지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김준이 순안을 본향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순안현이 한미하고 보잘 것 없는 지역이었다면 당시 집권자인 김준은 굳이 순안현을 본향으로 지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가 연원을 알 수 없는 천인출신이란 점은 이러한 추측에 더욱 힘을 실어 주는 요소이다. 결국, 당시 순안현의 위상은 작지 않았음을 이 사실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12~13세기 강화된 지방통치의 경향은 무인집권기를 거치면서 보다 강력하게 통치체제에 편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영주는 왕실의 안태지로서의 역할과 집권자인 김준과의 관계 등에 의해 행정적으로 격상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1)『고려사』제57권 - 지 제11 > 지리 2 > 상주목 > 안동부.
(2)『고려사』 제130권 - 열전 제43 > 반역 4 > 김준.
(3)『고려사』제57권 - 지 제11 > 지리 2 > 상주목 >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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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를 보면 "고종46년(1259년)에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시켰는 바" 라고 적혀있습니다.
옛날에는 고을주(州)자는 큰고을에 붙여주는 이름이였답니다.
그럼 영주라는 지명은 1259년에 김준이라는 인물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고종이 붙여준 이름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될 것은 조선시대 정감록 이전 부터 우리지역(영주)은 살기좋고 이름있는 고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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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닌 관계로 위에 글은 자문을 받았으며 혹여나 틀린 내용이 있으면 덧글 부탁드립니다.
아래는 현재 방영중인 MBC 주말드라마 "무신"
바로 김준(김인준)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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